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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28일 지상 35미터에서부터의 투쟁

올해 1월 6일, 한국의 한 여성이 85호라고 번호가 붙여진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지상 35미터가 되는 곳에서, 그녀는 최대 조선업체 중 하나인 한진중공업 (출처: (Hanjin))에 의해 행해진 강제대량해고에 대항하는 전쟁을 선포하였다.

Image(출처: source)

BBC가 '외로운 한 명의 시위자' (출처: depicts) 라고 표현하였던 김진숙 씨는, 전국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인데, 부산은 한진 영도 조선소가 위치한 곳이다. 그녀는 크레인 위에서 고구마와 죽만으로 연명하고 있으며, 태양열 (휴대폰) 밧데리만이, 그녀가 의지하고 있는 소중하고 유일한 세상과의 의사소통 끈이다. 회사측은 크레인 주변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음식, 물, 전기의 공급을 중단하고자 수차례 시도하였고 (출처: attempted), 그때마다 사람들은 회사측의 시도들에 대해 결사적으로 항의해야 했다. 혹독한 폭염은 단지 만지기만 하여도 피부가 데일 정도로 크레인을 달구고 있다.

200일이 지났다. 한진이 정부에게 공권력 사용을 요청하자, 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것은 85호 크레인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집회인 '희망버스'를 막기 위해, 경찰병력이 지원되는 것을 가리킨다. 2차 희망버스는 이미 매우 심각한 진압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는데, 이 때 시위집회자들을 해산시키고, 참가자들이 그들의 목적지인 85호 크레인에 다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최루액과 물대포로 무장했던 경찰과 한진측이 개별적으로 고용한 용역들로 인해, 시위는 전쟁터로 변했었다.

Image최루액을 발사하며 집회 참가자들이 85호 크레인으로 다가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경찰병력 (출처: source)

전쟁은 치열해졌고, 지금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지만, 그녀는 더이상 '외로운 시위자'가 아니다.

한진 강제해고, 사법절차를 따르지 않는 불법 폭력, 그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짧은 역사

10년 전, 한진은 노조와 그 어떤 합의 노력도 없이, 650명의 노동자들을 대량해고시키고,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였다. 회사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집단교섭권을 부정하였고, 심지어는 노조 위원장이었던 김주익 씨를 포함한 20여명의 주요 인물들을 피해보상소송으로 고소하는 '법적 학대'를 자행하였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과 집들은 가압류 되었고, 이는 그들 가족들에게는 끔찍한 경제적 학대가 되었다. 곧이어, 많은 이들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주익 씨는 집단교섭권을 요구하고 한진에 의한 폭력을 맹렬히 비난하며, 85호 크레인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하였다. 한진측으로부터는 노조와 비폭력적 교섭을 갖고자 하는 그 어떤 진지한 의지의 신호도 얻지 못한 채, 지상 35 미터 크레인에서 129일 간의 절망적이고도 맹렬한 투쟁 끝에, 그는 크레인 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년 후, 한진은 또 다시 400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을 동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박해를 반복했다. 대규모 해고에 대한 공식적인 이유는 '재정적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해고 직후, 한진을 지주회사로 가지고 있는 한진중공업홀딩스는 주주들에게 1,660만 US달러에 달하는 주식배당금을 지급하였고 (출처:16.6 million US$), 이는 '재정적 어려움'이라는 회사측 해고사유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으로, 대중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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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폭력과 학대에 대한 분노와 반감을 소리쳐 외치고 있는 한진 영도조선소의 한 해고노동자. (출처: source)

한 보도에 의하면 (출처: report), 한진은 '억울함'을 호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금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분을 분배해주었다" 라는 억지주장을 몇차례나 펼쳤다. 한진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은, 한국 3대 조선업체 노동자들의 평균 소득의 60% 밖에 달하지 않는데, 이를 두고 한진은 "우리 회사 근로자들이 너무 많은 임금을 받아서 가격경쟁력에 해가 되고 있다" 며 불평하고 있다.

세계 4위 규모의 조선소 - 필리핀에 있는 한진 수빅 조선소와 인권침해

Image500여명의 노동자들이 한진 조선소의 노동조건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는 시위를 벌렸다. 노동자들은 또한 필리핀 잠발레스에 있는 수빅으로 향하기 전, 한국 대사관과 마닐라에 있는 노동고용부를 방문하였다. 2011년 7월 3일. (출처: source)

"대부분의 산업재해들은 '자살'로 기록되고 있다"

한 보도에 (출처:report) 실린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공식적으로 집계된 산업재해만도 3,000여 건에 달하며, 한진 수빅조선소에서 발생한 사망건수는 41건이 넘는다. 수빅조선소는 한진으로부터 직접고용된 직원이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모든 노동자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하청계약들을 통해 고용되는데, 그 복잡함이 하청고용 시스템의 잔인성을 숨겨주고 있다. 이러한 고용구조 속에서,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들로부터 교묘히 빠져나가기가 대단히 쉬워졌는데, 이는 대부분 근로조건들과 최소임금에 관한 법적 책임들이다. 한국-필리핀 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진의 부당행위를 다루기 위한 양국 노조간 협력을 발표한 어느 보도에 따르면 (출처:report), 산업재해들은 적절한 보상 지원을 회피하기 위해 '실종' 또는 '의문사'로 기록되고 있다.

법적 허점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하청계약들 외에도, 한진은 6개월 주기의 정기적 해고를 시행함으로써 그 어떠한 민주적 노동조합의 설립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고 보도된 바 있는데 (출처:reported), 이는 필리핀 노동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노동자를 반드시 직접고용 하여야 하며, 그러써 노동자의 법적 고용주로서의 전적인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한진은 회사의 부당행위와 인권침해를 비난하는 시위자들을 대할 때마다 항상 '법적정당성'을 강조해 왔다.

"그들은 언제든 우리를 몽둥이로 때리고, 목을 조르고, 가위로 찔러요. 뺨을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 일은 흔해요. 우리는 개처럼 살고 있어요."

약 2만명의 필리핀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으며, 조선소 내에 있는 감옥과 같은 숙소에서 지내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한 노동자는 고백하기를, 언젠가 그가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감독관에게 1일 휴가를 요청했을 때, '미친놈'이라고 불리며 심한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필리핀 노동자들의 한달 평균 소득은 한국 노동자들의 한달 평균 소득의 10분의 1에 불과하는데,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약 200 달러에 해당된다. 약 천명 정도는 한국인 노동자들이며, 나머지는 모두 필리핀 노동자들이다. 대부분의 감독관들은 한국인인데, 심한 인종차별주의로 악명이 높으며, 폭력과 언어폭력을 휘두르는데 서슴치 않는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임시직인 까닭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 민주적 노동조합을 결성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진 회사측이 꺼려하는 노조 설립 계획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누구든지 쉽게 고용주에 의해 해고당할 수 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다루기 위한 한진과 경찰간의 협력을 증명하는 유출물

한진은 해고노동자들의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용역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은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통해 복직 투쟁을 하기로 결정한 활동적인 노조위원들과 해고노동자들을 상대로 법에 저촉되는 폭력과 협박을 행사하였다. '희망버스'라는 이름이 붙혀진 일련의 대중집회를 포함하여, 노동조합들과의 대화를 단호히 거부하는 회사측에 항의하는 집회들이 있을 때마다, 용역들은 언제나 경찰과 '함께'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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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는,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85호 크레인 주위에 모인,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여는 축제와도 같은 집회이다. 위 그림은 손문상 씨가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자료에 의하면 (출처: material), 2차 희망버스가 있기 전, 회사와 경찰 사이에 협의가 있었으며, 경찰측으로부터 제공된 공문들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공문은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의 업무를 돕기 위한 적절한 인력들을 고용할 것'을 한진측에 지시하고 있는데, 이는 딱 잘라 말하자면 '용역'을 가리킨다.

김진숙 씨의 희망 : 살아서, 두 발로 크레인을 내려가는 것

이 힘겨운 투쟁을 시작하게 된 이유와 목적들을 설명하는 한 편지에서 (출처: letter), 김진숙 씨는 그녀의 목표를 '내 스스로, 이번에는 살아서, 이 곳으로부터 내려가는 것이다. 그것은 고 김주익 씨의 간절한 희망이었다' 라고 적었다. 그녀는, 85호 크레인을 절망의 상징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바꿀 것이며,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고 적었다. 그것은 김진숙씨 혼자만의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울 통해 헌법에 의해 보장된 권리들을 공격의 목표로 삼은, 한국 내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학대와 불법 폭력에 대해 같은 분노의 감정을 나누고 있는 모든 이들의 투쟁이다.
그녀는 더이상 외로운 한 명의 시위자가 아니다.

보다 많은 영문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곳들

http://storify.com/wjsfree

http://interceder.net/dashboard/Hanjin

KMWU calls for urgent solidarity support

[로이터 통신] In Reuters: FEATURE-Woman striker rallies Korea workers from the top of a crane

[CNN]In CNN: Protesters, police clash in South Korea

[알 자지라] In Al Jazeera:
User Story: South Korean Actress Promotes Labour Protest
The Stream - South Korean Ship Yard Battle Continues
The Stream - Hanjin Workers' Struggle Continues - Kim Jin-suk & Sungmi Park & Precy Dag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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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1일 지상 35미터에서의 투쟁 part 2: 해고는 살인이다 #Hanjin

***영어 원본은 여기에: http://wlcentral.org/node/2129 있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대량 해고와 경찰의 폭력적인 노동권 탄압에 맞서는 단결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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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에서 날아올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을 담은 풍등들.

1차 희망버스에는 총 742명이 참여했다. 2차 희망버스에는 1만 명 이상이 모였고, 희망버스의 참가자 수는 올 7월 31일 열렸던 3차에서 1만 5천 명에 달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야당 정치인들도 희망버스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지상 35미터에서의 투쟁에 연대를 표하기 위해 부당 해고의 피해자들이 연 수많은 집회들이 전국적으로 쉬지 않고 이어졌다. 동참자들의 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정도로 불어났다. 주류 언론들과 몇몇 정치인들은 이제 200일을 넘긴 85호 크레인 위에서의 시위를 계속하는 김진숙 씨와 연대하는 각종 집회 참여자들을 일컫는 ‘폭력적인 제 3자’라는 말을 주조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폭력적인 제 3자’는 사실 전혀 ‘제 3자’가 아니다 – 지상 35미터에서부터의 투쟁은 단지 한진의 노동권 탄압만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6월에 있었던, 조건부로 정리해고를 수락하겠다는 한진 노조의 결정에만 맞서는 싸움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해고는 살인이다: 싸움의 시작 –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의 투쟁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유혈 진압

1.줄거리: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싸움

2009년 5월, 한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공업회사 중 하나이자 100개 이상의 해외 지부를 둔 쌍용자동차가 2,405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리해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노조는 ‘경영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정리해고에 맞선 총파업을 선언하였다.

사측은 직장 폐쇄와 해고자들을 상대로 희망 퇴직을 신청할 것을 종용하는 협박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맞섰다. 이에 서너 명의 노동자들이 뇌출혈과 심근 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노동자들은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고, 이 농성은 한국 노동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77일간의 유혈 투쟁이 되었다.

7월 15일, 사측은 기자들의 현장 촬영을 막기 시작했다.

7월 16일, MBC는 사측과 경찰이 점거 중인 노동자들을 ‘몰아내는’ 데 쓰기 위해 공모한 전략을 폭로했다. 제시된 문건에는 사측과 경찰이 수면 가스 사용, 헬리콥터를 동원한 수면 박탈 등을 논의한 내용이 드러나 있었다.

그후 사측은 음식과 물의 공장 내 반입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이를 2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측은 또한 당뇨병으로 발이 썩어들어가는 한 노동자와 최루액으로 화상을 입어 다친 노동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려던 의사들까지 막았다.

8월 5일 새벽 4시, 노동자들의 투쟁은 무장 경찰들과 경찰복을 대여한 사측의 용역회사 직원들이 ‘불법점거 진압’이라는 이름으로 무제한의 폭력을 행사하는, 목숨을 건 사투로 변하기 시작했다.

2. 경찰의 진압: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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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들이 평택 공장 지붕에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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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들이 8월 5일 무방비의 점거 노동자를 폭행하고 있다. 경찰은 점거 노동자들을 연행하는 데 있어 노동자들을 방패날로 찍고 곤봉으로 폭행하며 발로 차는 등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경찰 헬리콥터들은 최루액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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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진압으로 인해 공장에서 추락한 노동자가 다친 모습.

보건의료연합(KFMH)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점거 노동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살포된 최루액에는 고농도의 디클로로메탄이 포함되어 있었다. 디클로로메탄은 세계적인 화학물질 분류기준인 MSDS가 2급 발암물질이자 피부를 통해 곧장 인체에 스며들고 호흡 곤란을 유발하며, 중추신경계통 우울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분류한 독성물질이다. 보고서는 또한 현장에서 추출된 최루액 중 일부는 스티로폼과 비닐을 녹일 수 있을 정도였으며 몇몇 노동자들에게서 그로 인해 화상으로 입은 상처가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골절상과 찢어진 상처 등 몇몇 노동자들이 입은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공장에서 곧바로 96명을 연행했다.

3. ‘해고’는 어떻게 ‘살인’이 되었는가: 진압 이후 총 열다섯 명의 해고 노동자 사망

죽음의 진압작전 이후, 15명의 정리해고자들이 사망했다. 그 중 6명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2011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해고 노동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80퍼센트에 달하는 응답자들이 중증도 이상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음도 드러났다.

사측은 이에 대해 배상하기를 거부했고, 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사측은 또한 충분한 생산 물량을 확보하면 무급휴직자에 한해 1년 안에 복직을 약속한다던 2009년의 공식 합의 내용도 지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전쟁’이후에 통일된 슬로건이 되었고, 어디에서든 노동자들이 부당 해고와 기업의 노동권 탄압에 맞서 싸울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통의 구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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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도 사정이 다를 바 없다. 한진이 ‘경영난’을 빌미로 2007년부터 한국에서 정리해고한 노동자들은 현재까지 3,000 명에 이르며, 필리핀의 수빅 만에서 2007년부터 산재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들은 30명 이상에 이른다.

‘외유’에서 돌아온 조남호 회장, 기자회견을 열다

한진중공업(HHIC) 회장 조남호는 한진의 정리해고 사태와 필리핀의 수빅 조선소를 건립할 당시의 탈세 의혹에 대해 열린 국회 청문회에 불참했었다. 불참에 대한 공식적인 사유는 ‘외유’였다. 그는 마침내 어제 한국에 도착했으며, 헬기를 통해 입장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찰은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들로 구성된 시위대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조씨는 (영도 조선소가 위치한)부산 경제에 수십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희망퇴직자에 한해 정리해고 대상 노동자들의 자녀들 교육도 지원할 의사를 밝혔다. 거대한 액수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경영난 때문에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끝난 3차 희망버스와 4차 희망버스에 대한 준비 작업

전국에 있는 시민들이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 중인 김진숙 씨에게 연대와 지지를 표하기 위해 영도로 향하는 축제이자 시위인 3차 희망버스는 2차 희망버스에 비해 별다른 큰 충돌 없이 끝났다. 전경들이 85호 크레인으로 향하는 시민들을 막아섰지만, 시민들은 그에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축제를 시작했다. 축제는 밤을 새워 진행되었고, 기업들의 노동 탄압을 규탄하는 발언들, 노동 운동가들의 연설들이 펼쳐졌다. 작은 락 콘서트들도 열렸다.

4차 희망버스에 대한 공식 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선포되자마자, 희망버스 준비팀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희망버스 준비팀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이에 다음과 같은 멋진 말로 대답했다: “희망버스는 희망버스 준비팀이 아닙니다. 희망버스는 시민들의 열망으로 운행되니까요.”

4차 희망버스는 8월 27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